밤에 피는 꽃] 기별 부인 뜻과 자유 부인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이 12회 마지막화를 끝으로 해피앤딩을 맞이했습니다. 드라마 진행 중 '기별부인'과 '자유부인'이 나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기별부인의 뜻과 자유부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별부인이 될뻔 했지만 자유? 부인이 된 여화(이하늬)
⨀ 기별 부인 이란?
기별부인은 혼인이 파탄된 부인을 이르는 조선시대 단어로 지금은 쓰지 않습니다. 기별은 오늘날 이혼과 같은 뜻으로 쓰였으나, 실상 평판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혼이 흔하지 않은 시대적 배경에 기별 부인은 남편에게 버림받은 부인이라는 뜻을 강하게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릴 기( 棄 )를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남편에게 소박 맞은 부인은 집에서 내쫓기게 되는데 그러면 이혼한 것으로 봤습니다. 바로 기별 부인이 되는 것이지요.
주로 칠거지악을 이유로 쫓겨났는데, 사실적 이유는 얼굴도 한번 못 보고 결혼하는 관습으로 인해 추녀가 시집을 오거나, 행동습관이 맞지 않는 경우 등 시집온 부인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칠거지악을 핑계로 내쫓을 수 있었습니다.
남성의 지위가 여성의 지위보다 월등히 높은 사회적 배경속에서 인권에 대한 존중 없이 일어난 슬픈 역사입니다.
한편 기록에 의하면 세종의 며느리 정씨가 이혼하여 기별부인이 되었고, 스스로 기별부인이라 칭하고 혼자 살았음을 밝히고 자신의 제사를 친정에 맡기며 자신의 재산인 노비와 논밭을 친정조카에게 상속하겠다는 문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초기에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경제적 지위를 누렸기에 당당히 이혼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세종의 며느리 송 씨와 정 씨가 기별 부인이 된 사연
세종은 자신이 아끼는 아들 영응대군의 첫째 부인인 송 씨를 병이 있다는 이유로 내쫓았고, 그 후 간택하여 두 번째 부인으로 정 씨를 들였으나, 정 씨는 끝내 정을 붙이지 못하고 기별부인이 되었습니다.
영응대군은 아버지 세종이 돌아가신 후 정 씨와 이혼하고 첫 번째 부인인 송 씨를 다시 부인으로 맞이하여 살았으며, 영응대군은 정 씨가 부인으로 있는 기간에도 송 씨와 두 딸을 낳았기에, 사실상 송 씨가 부인이고 정 씨는 겉으로만 부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자유 부인 이란?
밤에 피는 꽃에서 여화(이하늬)는 피나는 눈물로 좌상(시아버지)의 죄를 밝혔으나 좌상의 며느리였기에 이혼 후 기별부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기별부인의 처지는 좋지 않았기에 여화를 위해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됩니다.
바로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남편과 결혼한 여화의 혼인이 사기 결혼이었음을 밝혔고, 이를 임금이 윤허하여 혼인 무효로 인정받아 누구의 부인도, 누구의 며느리도 아닌 자유의 부인이 된 것입니다.
자유 부인이란 일반적으로 유부녀이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일회성? 사랑을 찾아다니며 노는 부인을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바람둥이? 같은 느낌의 부인으로 자유롭게 유희를 위한 생활을 즐긴다 하여 자유부인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여화는 그런 자유부인이 된 게 아니라 마음껏 복면을 하고 세상을 위한 일탈을 만끽하며 지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스포일러방지 조치 하겠습니다.
자유부인이란 단어는 19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졌으며 , 그 내용은 정숙한 대학교수의 부인으로 다소 궁핍하게 살던 여성이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직업을 가지고자 사교회에 나가게 되고, 동경하던 직업을 가지게 되어 이런저런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불륜과 탈선까지 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으며, 마지막에는 뉘우치며 가정으로 돌아가는 내용입니다.
지금 봐도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그 당시 전쟁 직후의 퇴폐 풍조를 배경으로 전통의 윤리관이 충돌하는 봉건사회와 서구문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는 남성들과 자유를 갈구하는 부인들에게 집 나가면 탈선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심어준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에도 일탈을 꿈꾸며 자유 부인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쓰기도 하고, 주로 가정에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 자유부인 타임이라고 부릅니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자부타임'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오늘은 이렇게 조금은 생소한 기별부인과 자유부인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왜 하필 버릴 '기'라는 글자를 사용했는지 씁쓸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이혼 제도는 있었으며, 이혼한 부인에 대한 평가가 곱지 못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유 부인도 그 반발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도 즐거운 시간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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