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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3.1운동 일어난 날을 3.1절節이라 부르는 이유

by 하니솔라 2024. 3. 1.

3.1절 - 3.1 운동 일어난 날을 3.1절節이라 부르는 이유

삼일절은 일제의 지배에 맞서 싸운 1919년 3월 1일의 독립선언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쓰여있듯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건립되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3.1절 표지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였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민족 스스로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선포한 것이고 이날을  대한 독립의 중요한 기점으로 보며, 이날 독립 선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발하였기에 다른 외부 세력에 의해 광복된 날인 광복절을 건국절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3.1운동의 정신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립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법적인 공휴일이자 국경일로 정하여 축하하고 있습니다.

 

3.1절이라 부르는 이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20년부터 당시 임시정부 내무부에서 매년 3월 1일을 '독립선언일'로 지정하여 국경일로 기념하며 축하할 것을 주창하였습니다.

 

1920년 당시 기록된 미주신문 [신한일보]에도  3월 1일은 미국의 7월 4일, 프랑스의 7월 14일과 같은 역사적 국경일이라 칭하였고, 임시정부 관보인 [독립신문]은 "비록 옥중에 계신 형제와 자매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듯하지마는 천만 대에 기념할 우리 민족의 부활일일 오늘 하로를 무한히 깃부게 축하하자,놀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인지 오랜기간 3.1절을 '순국선열을 추도하고 애도하는 날'로 잘못 알고 있으며, 3.1절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Day로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축하파티를 하듯 우리의 3.1절도 독립운동가의 호국정신을 기리면서 대한민국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기쁜 날로 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3.1절 국경일 축제

 

대한민국의 국경일은 1949년 제정되어 3.1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을  4대 국경일이라 불렸는데,  2005년 한글날이 추가되어 총 5일이 되었습니다.

 

 

3.1운동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는 있으나 나라의 권력을 빼앗긴 우리 민족은 그 후 일제에게 우리의 역사와 말을 못 배우게 하고 무력적인 지배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2차 세계 대전은 끝나가고 있었고 강대국이 된 미국의  월슨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를 내세워 "모든 민족은 그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전쟁을 끝내려 했으며 이에 강대국에게 핍박과 지배받던 나라들은 독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1919년 우리나라도 독립을 이루고자 열망하는 독립투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와중에, 먼저 일본의 도쿄에서 2.8일에  조선인 유학생 600여 명이 '2.8 독립 선언'을 낭독하며 당당히 대한민국은 43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자주국가임을 선포했습니다.

이에 준비 중이던 독립 선언문을 3.1일에 민족대표 33명이 파고다공원(탑골 공원)에서 선언하기로 하고 이 소식은 학생들과 국민들에게도 퍼져나가 이날 몇천 명의 사람들이 파고다공원에 모여 기다렸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학생 대표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모여있던 우리 국민들은 품에 숨긴 태극기를 꺼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커지는 만세소리에 일본경찰의 칼로 찌르고 총격을 가하는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며 멈추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각 민족대표 33인은 종로 '태화관'에서 만해 한용운 님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대한독립만세 '를 삼창하고 축배를 든 후 그 자리에서 일본경찰에 스스로 신고하여 체포되었습니다. 태화관에서 선포한 이유도 혹시나 자신들이 체포되는 것을 보면 군중들이 흥분하여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과 태화관에서 선포한 독립선언은 의주, 평양, 원산, 안주, 의주, 선천, 진남포까지 만세운동에 참여해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그날 파고다공원에서 만세를 불렸던 유관순열사도 고향인 아우내로 돌아가 거기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모진 옥살이를 당하고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만세운동은 해외로도 계속 퍼져나가 전 세계에 한국의 독립의지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삼일운동 이후 만주와 연해주에 독립군 부대가 조직되었으며, 그중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며 자주적으로 아무런 폭력 없이 평화로운 만세만을 외친 만세운동은 국사 편찬위원회 발표에 의하면 시위 횟수 1692건, 참가자는 100만 명, 사망자는 약 1000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일제는 3.1 운동 이후 '문화통치'로 정책을 바꾸어 민족을 분열시키려는 정책을 폈으며 창씨개명 등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하였지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끝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오늘날의 눈부신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3.1절 태극기
3.1절에 잊지말고 태극기를 답시다

 

 

3.1 운동의  의의  

첫 번째로는 독립운동의 대대적인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독립운동이 조직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국군이 없었는데 독립군대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에 시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삼일절이 바로 임시정부 수립의 날입니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받아 세워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독립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져 독립 의지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자주적인 독립운동을 일으킨 국가로서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오해   

민족대표 33인은 나중에 모두 친일로 돌아섰다는 이상한 오해가 퍼져있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실제 친일이 되어 변절한 사람은 단 3명뿐입니다. (박희도, 최린, 정춘수). 그 외 분들은 모두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셨습니다.

 

특히 이들은 전국적인 3.1 독립운동의 확산을 위해 조직적으로 미리 기획하여 일사불란하게 성공적인 독립운동을 이끌어낸 대단한 능력자이자 애국자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태화관에서 낮술을 먹었다는 둥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독립선언의 의식으로서 성공을 위한 축배를 들었을 뿐임을 악의적으로 보는 터무니없는 해석이라 보입니다.

 

 3.1절 100주년 기념식 - 2019년  

 

 

100주년 3.1절 기념식

2019년 약 2시간가량 진행된 100주년 기념행사로 광화문 라이브 중계하여 생생한 현장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3.1절을 맞이하여 삼일운동이 일어난 날을 삼일절이라 부르는 이유와  3.1 운동에 대해 살펴보고. 3.1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3.1절을 맞이하여 순국선열의 위대한 정신을 기리고 조국의 독립을 그렇게도 염원한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바람대로 독립을 경축하며 축제를 즐기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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